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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6-03-22
조회수 2033
추천수 426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2026년 3월 19일

이 세상에서 날개가 가장 긴 새로 두 날개를 활짝 펼칠 경우, 날개 최대의 길이가 3미터 이상 되는 새가 있는데 그 새가 바로 ‘앨버트로스’(albatrosses)라는 새입니다. 이 새의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신천옹(信天翁)'이라고 합니다. 앨버트로스는 순하고 맑은 눈망울을 가졌지만, 두 발을 딛고 이 땅 위에 서 있을 때는 아주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긴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으며, 발가락 사이에 달린 물갈퀴 때문에 걷거나 뛰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바보새'로 불리기도 하는 새입니다.

그런데 이 앨버트로스에겐 반전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때는 모든 생명체가 거친 비바람과 폭풍우를 피해 자신의 몸을 감추게 될때, 앨버트로스는 폭풍우 앞에서 숨지 않고 당당하게 절벽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게 됩니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로 그때가 앨버트로스에겐 비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눈물겹도록 소중한 기회인 것입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6일 동안 날갯짓도 없이 강한 바람의 힘으로 날아갈 수 있는데 두 달 이내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나는 새요, 세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바로 ‘바보 새’로 불려지는 새, 앨버트로스입니다.

그 어떤 악조건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때를 인내함으로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나는 앨버트로스의 위대함처럼 눈부시게 비상하는 그날을 위해 참고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다리고 있을 경우 반드시 바상하는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세계 최고 부자임이 증명된 앤드루 카네게는 자신의 사무실 벽에 조용한 바닷가 그림 한 장을 평생 걸어두고 생활했다고 합니다. 앤드루 카네기는 미국 철강 산업을 일으켜 세운 대단한 인물로 전성기 자신의 재산이 오늘날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0조 원을 상회 하는 것으로 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을 다 기부하면서도 그 한 장의 그림만큼은 끝까지 자신의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 그림 속에는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바다의 숨결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이 빠지면 끝이라고 말했지만, 앤드루 카네기는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늘 말하기를 “밀물과 썰물의 때를 알아야 한다”라고. “지금은 물이 다 빠져 있을지라도, 바다의 물은 반드시 다시 찬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 모자람이 문제가 아니라 물이 다시 찰 때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눈앞에 있는 돈을 좇아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곳, 대기실은 우리를 한없이 낮아지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대기실에 머물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무력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야말로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에겐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인생의 대기실”은 하나님을 가장 간절히 찾을 수 있는 나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계획엔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소명을 이룬다’는 말을 능동적인 의미로 해석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나를 맡기는 수동적인 행동을 통해서 소명이 이루어질 때가 더 많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장 수동적인 것 같지만, 가장 능동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 조차도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 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로 이어지는 지름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십자가’를 통해서 만 갈 수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 역시 기다림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나사로가 죽은 후 나흘이 지나서야 찾아오신 예수님께 늦게 오셨다고 원망했습니다(요11:21). 하지만 예수님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 이후 다시 살리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을 기다리게 할 때도 없잖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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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무능력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기대하는 시간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삶의 현장에 닥쳐올 때, 그 인생의 대기실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완벽하게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 내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영적 변화와 함께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기다림의 시간이 끝난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다림 가운데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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