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폐설존(齒弊舌存)’을 기억할 때
2025년 8월 8일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 두 마리가 싸움을 벌였습니다. 무리 가운데 최고 지도자를 결정하는 수컷끼리의 싸움이었습니다. 드디어 벌어진 결전의 시간, 정말 무섭게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포효하며 덤벼들었습니다. 그런데 상대 호랑이는 큰 소리로 포효하는 호랑이에게 소리를 지르기보다 강력한 눈빛을 발하며 침묵으로 응수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포효하며 상대 호랑이를 제압할 것 같던 호랑이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 치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소리 지르는 호랑이일수록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호랑이는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강력한 눈빛과 위엄으로 상대를 제압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강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양지덕을 의미하며 온유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가을날 익어가는 벼 이삭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숙이듯이 지혜와 능력을 갖춘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낮추어 상대의 의견을 깊이 경청하고 더 좋은 지혜와 가르침을 얻으려 합니다.
어느 날 중국의 사상가이며 도가 철학의 시조인 노자 선생이 눈이 많이 내린 이른 아침 숲길을 조용히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어디선가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굵어 튼튼한 가지들이 처음에는 눈의 무게를 구부러짐 없이 지탱하고 있었지만, 점차 눈이 쌓이고 쌓여 무거워짐이 심한 가운데 그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반면 이보다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임에 따라 자연스레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린 후에 다시 원래대로 튀어 올라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을 목격하게 된 노자 선생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저 나뭇가지처럼 형태를 구부리고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로구나”
노자 선생이 평소에 공경하며 따르던 어른 ‘상용’ 옹이 노환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을 때 그 어른을 찾아가 마지막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상용 옹은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가 다물고 나서 물었습니다. “내 이가 아직 있는가?” 없다고 대답을 하자 그는 다시 입을 벌렸다가 다물며 물었습니다. “내 혀는 있는가?”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잠시 침묵하고 있던 어른이 질문했습니다. “내 말을 이해하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던 노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단단한 게 먼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게 남는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상용 어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네. 천하의 이치가 모두 다 이 입안에 있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화는 치폐설존(齒弊舌存)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는 사건입니다.
태강측절(太剛則折;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의 고사는 나무에게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라 사람에게도, 힘도, 권력도 지나친 강함으로 작용하게 될 경우, 부러질 수 있고 끊어질 수 있기에 유연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늘 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강변의 많은 갈대처럼, 바람 앞에서 늘 흔들리지만 제 자리를 지키는 수양버들처럼 우리에겐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힘과 권력은 인간에게 놀라운 매력과 유혹의 손길을 내밀지만 영원하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강한 만큼 부러지고 뽑히는 것도 쉽습니다.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 던져주는 경고며 ‘그 힘을 빼라’라는 메시지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힘을 가지려고 안달합니다. 돈의 힘이든, 권력의 힘이든, 가진 자는 군림하고 큰소리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힘의 논리와 권력의 논리만을 믿고 계속 강행한다면 반드시 후회할 날이 돌아옵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 세상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진리요 삶의 이치입니다.
성경 시편 37:11에 보면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 5:5에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땅을 차지한다”라는 말씀은 “이 세상을 지배하며 다스린다”는 말씀이요,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되 온유한 자가 부드러운 자가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말씀입니다.
서약 격언에 “펜은 칼보다 강하다(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 격언 역시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직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격언입니다. 명심보감에서는 “부드러움이 억셈을 이기고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 그러므로 혀는 오래가나 이는 억세어서 부러진다.”라고 했습니다.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강한 것이며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守之勝剛 弱之勝強)”라는 도덕경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여름입니다.
지나친 강인함과 단단함이 난무하는 21세기 한국 사회 속에서 국가 권력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는 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일 것입니다. 부드럽게 국민을 생각하는 권력, 부드럽게 국민을 섬기는 위정자,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복지를 대변해 주는 부드러운 세상을 기대하며 풍성한 화평과 기쁨이 넘치는 나라가 되기를 오늘도 새벽을 깨우며 두 손을 모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