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 될 수 있는 길
2025년 1월 7일
독일 극작가로서 독일 문학과 연극학의 근대화를 촉진 시켰던 G.E.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은 말하기를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과 자기 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질 수 있는 법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레싱의 말처럼 우리 주변에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은 다 자기 희생과 고난의 터널을 잘 통과한 어른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존경 받는 성군 다윗 왕이 그러했으며, 유대의 왕족으로서 구약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4대 선지자 중에 한 분이셨던 다니엘이 그러합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 출신으로서 정복자의 나라 바벨론에 끌려가서 힘겨운 포로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고 대 선지자로 존경 받는 신앙 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의 시간을 잘 극복하며 자기 희생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요, 자기 희생을 위한 놀라운 결단과 헌신의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남지역에서 활동하신 대단한 애국자로, 자랑스러운 교육가이면서 많은 사람 앞에 귀감이 되신 신앙인을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분은 서부 경남의 작은 도시 거창에 명문 기독교 사학인 거창고등학교의 초석을 놓으신 3대 교장 전영창(1917∼1976)선생님이십니다. 그는 존경받는 교육가로서 독립 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지난해인 2024년 국가로부터 건국포장을 수여 받으셨으며 나라 사랑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전북 무주 출신으로서 무주 적상면에서 3.1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동자로 역할을 하시다가 옥고를 치렀던 전일봉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를 진학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미국 선교사 보이어의 추천과 도움으로 전주의 기독교 명문 사학인 신흥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사역 하고 있었던 월리엄 린튼 선교사((미국선교사 W. A. Linton)에 의해서 일본 고베신학교로 유학을 가게 되었으며, 유학 생활 가운데 많은 영향을 받은 분으로 독일의 종교개혁자였던 존 칼뱅(Jean Calvin, 1509-1564)과 일본인 신학자였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 선생이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해군이 하와이 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 만을 공격했던 그다음 날, 전영창 선생님은 사상이 불온하다는 것과 신사 참배에 동참하지 않고 거절했다는 이유로 신학교의 기숙사에서 체포되어 2년 간의 징역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1년 간 옥고를 치르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전영창 선생님은 주한미군 군종실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며 조국 대한민국의 재건에 헌신한 바 있습니다.
1947년, 미군 군목이었던 브라운 소령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 유학생 여권을 가지고 꿈에 그리던 미국 유학 길에 오르게 되고 웨스턴신학교에서 공부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졸업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에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장에게 찾아가 즉시 귀국하여 조국을 위해서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학장이었던 뮬더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2주일만 기다리면 학위를 받을 수 있는데 졸업하고 돌아가면 안 되겠나?” 학위를 받고 귀국하라는 학장의 권유에 “제가 미국에 온 것은 미국에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조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동포를 배신하는 일이 됩니다.”라는 진솔한 고백과 함께 “나라가 위기에 빠져 있는데 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하는 선생의 분명한 결단과 선택 앞에서 결국 뮬더 학장이 감동하게 되고 귀국하기 하루 전인 1951년 1월 8일 졸업 시험도 치르지 않고 학장실에서 그 누구도 받지 않은 특별한 졸업장을 받고 학장의 도움을 받아 귀국하게 됩니다.
1월 14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미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서 전쟁 피난민을 위한 구조 사업을 시작하였고 경남구제위원회(현 고신의료원)를 설립하여 당시 평양에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월남하여 천막 진료를 펼치고 있었던 장기려 박사와 함께 무료 진료를 하면서 미군에서 제공 받은 많은 의료 품과 구제 품을 배포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내일을 꿈꾸게 하였으며, 1953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콘코디아신학대학으로 다시 유학을 갔다가 학위를 마치고 1955년 귀국함으로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주어졌지만 다 마다하고 빚으로 넘어가려는 거창고등학교 제3대 교장으로 부임하여 기독교 명문 사학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결단을 내려야만 할까요? 유대인 아비하일의 딸로서 본명이 하닷사인 에스더가 자신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으며 성장하여 뜻하지 않게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로의 왕후가 되었지만 자신의 민족 유다인들이 멸절될 수밖에 없는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놀라운 결단과 함께 자신의 왕후 자리를 던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결단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감동케 만드는 모습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초 법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왕 아하수에로로부터 더 큰고 놀라운 총애를 받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의를 위하여 죽고자 했을 때 자신도 살고 민족도 사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2025년 한국 사회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입니다. 그동안 아름답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위상과 명예와 가치가 무너질까 봐 심히 걱정되는 현실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치적인 불안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도자의 결단과 자기 희생의 모습, 고난의 길을 기대하는 모습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은데-----, 그것이 영원히 나는 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