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돌아보며
2025년 1월 2일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Jr, 1924-2024)) 전 미국 대통령에게 노벨상위원회에서 붙여준 인사말 가운데 가장 인상 깊게 남는 말은 “가장 위대한 미국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노벨상위원회가 예언한 대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이후에 전 세계 속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시고 의미 있는 사역, 보람 된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지난해 12월 29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하늘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현직 대통령의 상식 밖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야당의 탄핵 사건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이 글을 쓰는 필자에게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던 어른이기에 카터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몇 가지 삶의 교훈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카터 대통령은 1924년 10월 1일, 미국 조지아주 남서부 지역 섬터 카운티에 위치한 플레인스(Plains)에서 태어나셨으며, 3살 때부터 마라나타교회를 출석하며 성경과 더불어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해군에 입대하여 잠수함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부친의 사망으로 인해 1953년 대위로 전역한 이후에는 자신의 고향인 플레인스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땅콩 농장을 운영하며 농장 사업가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그 이후 농장 사업가의 길을 걸으며 노예 해방을 반대하던 미국 남부지방에서 흑인 차별에 대한 반대운동을 펼치며 인권 운동을 하다가 정치에 입문하게 되고, 1962년 상대 당 후보의 부정선거로 인하여 조지아주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1970년에는 조지아주 주지사로 선출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무명의 지방 정치인이 미국 중앙의 정치 무대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어 힘들게 대통령에 당선됨으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제39대 대통령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사실 그가 현직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이란 인질 사태 등으로 인하여 별로 인기 있는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1980년 제40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패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자리에서 퇴임하고 난 이후에 가족과 함께 고향인 플레인스 목장으로 돌아가 일반 평민이 되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떠나 평민으로 돌아간 이후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퇴임 이듬해 1982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카터 센터(The Carter Center)”를 만들어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증진을 비롯하여 세계인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힘을 써셨으며, 각종 질병 퇴치를 위한 각국 활동과 국제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중재 활동에 힘을 써셨습니다.
또한 전 세계 사람들을 돕는 집짓기 봉사활동인 ‘해비타트 사랑의 집 짓기 운동’을 통해서 각 나라에 임하게 된 자연재해로 인해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인 많은 이재민을 도우셨으며, 2015년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발병한 바 있고, 그 암 세포가 간과 뇌에까지 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엔 테네시주 내슈빌의 사랑의 집 짓기 현장에 몸소 나오셔서 못질을 하기도 했던 어른입니다. 그 결과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에서 퇴임한 후 재평가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한결같은 분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본인 스스로 본인을 소개하기를 ‘평범한 사람(Everyman)’으로 표현한 그는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소유했지만 정치적 이해 득실에 따라서 말이나 행동을 쉽게 바꾸는 일반 정치인들과는 달리 한결같이 평화와 인권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평화 운동과 인권 운동에 그 누구보다 앞장을 서셨기에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어린 꼬마 시절, 세 살 어린이로 침례를 받았으며, 고향 플레인스 마라나타 침례교회의 주일예배에 늘 참석했으며, 성장 후에는 모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해 오셨습니다. 대통령을 퇴임한 후에도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일이면 가능한 한 조지아주 플레인스에 있는 마라나타침례교회로 돌아와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 유세 중에도 주일은 교회로 돌아와 교사의 사역을 감당했으며, 95세이던 2019년까지 교사의 사명을 감당한 바 있습니다. 그 결과 매주 일요일이면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마라나타 침례교회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의 사망 이후에 낸 성명에서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관광객이 카터 전 대통령을 보기 위하여 좁고 긴 교회 의자에 비좁게 앉아 있었다”라고 회상하기까지 했습니다. 평생 기독교 신앙과 가족 사랑에 대하여 평생을 헌신하셨다는 점에서 재 평가를 받는 대통령입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29일 100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은 전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업적과 생애를 회고하며 애도한 바 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인권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봉사한 존귀한 삶을 사신 분으로 기억될 것이요, 참된 지도자의 본을 보이신 분이요, 참된 인류애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보여준 삶의 아름다운 모습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