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추억 은빛 그리움으로
2024년 12월 10일
17세기 스페인 사라고사 지방 벨몬테 출신 철학자요, 예수회 신부로서 대중들에게 높이 평가 받았던 발타자르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 1601-1658)은 나이 18세에 예수회에 입회 하여 21세까지 철학을 공부했고, 그 후 사라고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25세(1627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인문학 교수의 길과 설교 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의 저서는 『사람을 얻는 지혜』(Oraculo manual y arte de prudencia)를 비롯하여 많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회 신부였지만 글 안에는 종교적인 교리나 기독교 도덕 개념을 지향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삶의 문제, 삶의 목표를 개인의 성장과 성숙에 두고 인간의 근본적 도리를 강조해 온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라시안은 인생 말 년에 교회의 허가 없이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는 이유로 가톨릭교회로부터 징계를 받고 교수직에서 해임되기도 했으며, 감금과 감시에 시달리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는 가톨릭 사제로서 계속되는 처벌과 징계로 인해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는 가운데 1658년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가 남긴 많은 어록들이 있습니다. 그 어록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했던 시절의 따스한 추억과 뜨거운 그리움은 신비한 사랑의 힘으로 언제 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웠을 때 경험한 따뜻한 사랑, 정겨운 사랑은 인생을 다 마칠 때까지 잊혀 지지 않는 법입니다. 얼마 전 도서관을 찾아갔다가 대출하고자 했던 책이 없어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김한솔 작가, 키만소리)는 책을 대출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엄마와 딸이 동남아 지역 배낭 여행을 한 달 하면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만화와 에세이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 책 속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일화가 담겨있습니다.
“엄마와 나는 특별한 둘만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노을 지는 해변을 함께 걸었습니다. 그날 따라 유난히 예쁜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습니다. 선선했던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릿결을 흩날려 주는 행복한 저녁이었습니다.
친구도 아닌 엄마와 단 둘이서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을 걷다니...퇴근하고 집에 가면 부엌에서 보던 엄마의 등. 그 굽은 등을 오늘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이상했지만, 이상하리 만큼 좋았습니다.
"엄마, 여행 오니깐 좋지?" 엄마의 대답 "우리 엄마 보고 싶다."
엄마의 엉뚱한 대답은 내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엄마의 우리 엄마. 바로 외할머니였습니다. 오래전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나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살짝 당황했습니다. 엄마는 외할머니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해 말씀하셨단다.
"현자야, 요양원에서 엄마 좀 데려가 주라."
"엄마, 이제 곧 큰 집으로 이사 가니깐 그때 모시러 갈게요."
그로부터 얼마 후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엄마는 당시 고3 수험생이던 나를 장례식에 데려가지 않았고, 대신 내가 외할머니에게 쓴 편지를 무덤에 묻어 주셨습니다.
그 후로 엄마는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 꽁꽁 묶어 두었던 그리움이 오늘 불쑥 튀어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엄마도 이런 예쁜 광경 한 번쯤은 보고 가셔야 했는데. 엄마는 못난 딸이라 이런 데 한 번도 못 모시고 왔어. 좁고 불편한 집이어도 거기서 모셔 왔어야 했는데. 고생 안 시켜드리고 싶은 욕심에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던 게 후회돼. 그게 살면서 제일 후회돼..."
외할머니 이야기를 마친 엄마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나도 함께 울었습니다. 처음부터 나의 엄마였던 엄마도 딸이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나 봅니다. 처음으로 내 곁의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엄마를 그리워하는 여린 딸이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그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사모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마음 깊숙한 곳, 나만이 보고 만날 수 있는 은밀한 마음의 사진첩에 모셔두었기 때문입니다. 은빛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이요, 그 사람의 큰 사랑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요, 그 사람을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 가면서 그런 사랑이 그리운 날이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그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힘들게 자기 자식과 가족들을 위해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도 가꾸지 못하고 험한 일을 감당해 오신 우리의 어머니와 연약한 허리가 휘도록 지게 짐을 지시며 자식들을 위해 수고의 땀을 흘리신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기대하신 그 뜻에 순응하지 못한 채 내가 받은 소명에 따라 걸어가야 할 길로 믿고 확신했던 목회자의 길을 45년 이상 걸어왔습니다. 인생의 가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지금,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집에 모시고 다정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살아본 적이 없는 불효자입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홀로 남아 계신 구순의 어머님을 모시고 와서 조촐한 식탁에 마주 앉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