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자리에 던져질 때
2024년 11월 5일
미국 역사 속에서 가장 큰 행운의 주인공으로 각광을 받았던 헨리 콤스톡(Henry Comstock), 그는 금광을 찾아다니다가 미국 서부지역 사막의 땅, 네바다주에서 다른 사람이 버린 은광을 아주 싼 헐값에 사게 되는데 그 광산에서 어마어마한 은이 채굴됨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가 미국 '버지니아'에 있던 아주 척박한 산, 전혀 쓸모없다고 느낀 산 하나를 1만 1천 달러를 받고 팔게 되는데 그 산에서 미국 최대의 금광, 140년 전에 무려 5억 달러 이상의 엄청난 황금이 채굴됨으로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어리석음에 대하여 억울해 하면서 술로 세웠을 보내다가 1885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장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전혀 예기치 않는 축복을 경험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때도 있고, 역경과 절망이 찾아올 때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복 된 자세일까요?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가 전혀 예기치 않게 불의한 고발을 당하게 되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때, 바울과 실라는 전혀 절망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잠자고 있는 시간, “한밤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찬송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내용은 두 가지 사실, “한밤중”이라는 말씀과 “기도하고 찬양했다”라는 말씀입니다. ‘한밤중’이라는 시간은 어둠 속에 싸여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나타내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단절된 시간,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시간, 감옥에 갇힌 채 철저하게 고립된 시간, 외로운 시간, 사람을 의지할 수 없는 시간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이런 절망의 시간, 고독의 시간이 찾아올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밤중’의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 의미 있게 극복하는 사람은 인생 역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막강한 정권을 잡았던 백인 정권이 흑인을 차별하고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극단적인 인종 분리주의 정책”을 목격하고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서 법조인으로서 그냥 있을 수 없었던 청년 넬슨 만들라, 그는 불의한 백인 정권을 향하여 흑인들의 인권을 되찾고자 하는 “인권운동가”로서 뜻깊은 활동을 하다가 힘겨운 감옥 생활을 하게 되는데, “27년 간의 지옥 같은 감옥 생활”은 그에게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참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성숙시키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고, 남아공에서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절망의 장소, 감옥 생활을 지혜롭게 잘 극복했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27년간 로벤섬 감옥 생활)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사의 전면에 설 수 있었고,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정책 “흑인과 백인의 대화합 정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힘겨운 감옥 생활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요, 성숙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찬송했다”라는 말씀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했다”라는 말이 아니요, “절망하고 포기했다”라는 말도 아닙니다. ‘기도 하고 찬송했다’라는 말씀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희망의 길과 소망의 길을 찾았다”는 말씀이요, 현실을 절망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을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의 시간,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암담한 상황 속에 놓여 있을 때, 그때는 하나님을 찾을 때요,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이사야 40:31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앙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바'라는 말로서 그 의미가 “묶다. 꼬우다”라는 뜻이요, “기다리다, 바라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벼를 탈곡하고 난 이후에 남는 볏집 하나하나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냥 살짝 잡아당겨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연약한 볏집을 여러 개 모아서 새끼 꼬듯이 잘 꼬게 되면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쓰임 받은 모세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태어낳을 때, 그는 아주 연약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나일강에 버려진 채 악어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애굽의 공주와 묶이게 될 때 대단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살인자로 도망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모세가 나이 80세가 되어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묶이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온전히 꼬이게 되니까 그는 대단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능력의 사람으로, 권능의 사람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영국의 사상가요 비평가인 존 러스킨이 쓴 “티끌의 윤리”라는 책에 보면 “진흙땅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때 무엇이 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대하여 러스킨은 스스로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모래와 흙과 불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놀라운 사파이어가 될 수 있으며, 모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오팔이 될 수 있으며, 맨 흙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될 때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무가치하게 보이는 한 줌의 흙이라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게 되면 놀라운 변화와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 같은 사실을 확신할진대 절망의 자리에서 인생을 비관하며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을 만나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됨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놀라운 변화와 기적을 맛보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