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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거울과 유리창의 교훈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4-05-04
조회수 5634
추천수 417

거울과 유리창의 교훈



가가호호(家家戶戶) 강아지를 키우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오래전 폐허가 된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어떤 강아지들도 그 집에 가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서 가장 순진한 강아지가 그 집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강아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 앞 계단을 올라가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면서 열린 문 사이로 집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집 안에는 수많은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흔들면서 자신을 쳐다보고 환하게 반기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정말로 멋진 집이로구나! 나 같은 강아지들이 나를 반겨 주고 있다니, 앞으로 자주 찾아와야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던 사납기로 유명한 강아지, 표독하기로 아주 유명한 강아지도 그 집 소문을 듣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그 집안을 들여다보자 수많은 강아지가 표독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에 불쾌해진 강아지는 으르렁거렸고 그러자 그곳에 있었던 모든 강아지도 일제히 으르렁대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으르렁대는 그 모습을 보고 겁을 잔뜩 먹은 표독한 강아지는 재빨리 그 집을 빠져나오면서 말했습니다. “이곳은 정말 무서운 강아지가 사는 곳이구나!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말아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그 집은 많은 강아지가 사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집 안에 깨어진 수십 개의 거울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집을 찾은 강아지들은 깨어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표정을 보고 생각하고 판단한 것입니다.

 

똑같은 유리로 만든 거울과 유리 창문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유리로 만든 유리 창문은 창문 넘어있는 온 세상을 있는 그대로 우리 눈에 보여주고 있으며 움직이는 모든 물체까지 물체 모습 그대로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리로 만든 거울은 유리 이면에 은색 칠이 되어있어 거울 이면을 전혀 볼 수 없고, 거울 앞에서 맺히는 각종 사물의 실체와 형상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리로 만든 거울과 창문의 차이점입니다.

 

어느 마을에 유명한 스승 아래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제자 중 한 사람이 그의 스승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형편과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의 말을 듣게 된 스승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아라. 누가 보이느냐?” 질문을 받은 제자는 창밖을 내다보고 난 이후 그의 스승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어떤 젊은 부인이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스승은 조용히 제자를 거울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시 질문하기를 “거울 속을 자세히 보렴. 지금 누가 보이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스승의 질문을 받은 제자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서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울에는 제 모습만 크게 보입니다.” 그때 스승이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거울과 창문은 똑같은 유리로 만들었지만, 차이가 있다면 거울에는 은색의 칠이 되어있고 창문 유리에는 아무것도 칠한 것이 없다는 것이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네 마음속에 있는 그 은색의 칠을 벗겨버려야 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덧칠 되어있는 각종 은색의 칠, 그 잘못된 죄악과 이념과 사상과 철학이 마음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 사물이나 다른 사람을 비롯하여 꼭 바라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선한 뜻도 온전히 보지 못한 채, 자기중심의 삶을 살게 되고 자기 원하는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시골에 있는 한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원대한 꿈과 비전을 품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섬기던 목사님은 얼마 가지 않아서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감당해야만 하는 사역이나 교회 밖에서 감당해야만 하는 선교사역에 있어서 너무나도 무관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강단 밑에 엎드려 주님께 울부짖으며 매어 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목사님에게 한 가지 지혜를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고서, 이와 아울러 그곳 지방 신문에 이런 광고를 냈습니다. “다음 주일 오후 2시에 <000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사람이 죽고 난 이후 사람의 장례식은 많이 참가해 보았지만, ‘교회의 장례식’이라는 광고는 처음 접하는 일이기에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드디어 교회를 장례하기 위한 예배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드리고 말씀도 선포하고, 마지막 차례로 교인들이 강단 앞에 놓여 있는 관에 나와서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 관 속에 누가 누워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모두가 한 줄로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다 심각하게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지각 있는 교인들은 금방 목사의 깊은 뜻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어 누워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죽은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만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 거울은 타인 속에 있어서 자신의 죄악과 결점을 똑똑히 비춰준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이 거울 속에 비친 개처럼 반응한다. 거울에 비친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납게 짖어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자녀는 거울에 비친 부모의 실상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모의 행동과 말을 통해 자녀가 배우고 따라 하며, 교회에서 목회자의 언행심사(言行心思)를 보고 성도들은 그대로 따라 하는 법입니다. 따라서 앞에 서 있는 부모님이 중요하고 앞에 서 있는 목회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올바른 부모님 올바른 목회자가 존재할 때, 그 가정과 그 교회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밝은 법입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목회자와 부모님을 비롯하여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많은 사람 앞에서 롤 모델(Role mode)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 정체성에 맞는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생명력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드려지는 예배만이 공동체 교회를 살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진정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발견하고, 맑은 유리창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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