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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타협하지 않는 절대 신앙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3-04-23
조회수 6169
추천수 421

타협하지 않는 절대 신앙

2023년 4월 23일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창조의 주가 되시며 역사를 섭리하시는 절대자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만을 증거하며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하나님만을 높이는 신앙입니다. 이 같은 숭고한 신앙의 길을 걸었던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 중심의 실존적인 삶을 살았기에 오늘날 기독교가 전 세계인들의 으뜸 되는 종교로 우뚝 설 수 있었으며 작은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 사회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선진들이 몸소 실천한 숭고한 그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 중심, 물질 중심, 육체 중심의 삶을 추구하는 현상들이 교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우리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 믿음의 길을 찾아 보고자 합니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세운 왕국인 프러시아의 후레데릭 대왕은 기독교와 교회를 비웃는데 앞장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본진랜드 장군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신하들과 같이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왕의 천박한 야유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웃는 말이었습니다. 그 결과 온 장내는 썰렁한 분위기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엄숙한 표정을 짖고 있었던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대왕 폐하, 대왕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십니다. 그 결과 저는 전쟁터에서 폐하를 위하여 38번을 싸워서 다 이긴 것입니다. 이제 저는 나이 많은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지금 대왕이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만나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 많아 영원을 바라보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분인 것을 잘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제 물러가려 합니다.” 이 놀라운 모습과 신앙고백에 신하들은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장군을 즉시 처형하라는 추상같은 대왕의 명령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들의 예상과는 달리 떨리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 했소. 나의 무례함을 용서하시오.”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자신의 분명한 신앙과 믿음의 결단을 표현할 때 세상이 비난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정해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 속에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잠시 이 땅에 머물다가 때가 되면 떠나갈 수밖에 없는 나그네요 필그림입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산 소망이 되시는 주님 앞에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그날을 소망하며 정결한 신부와 같이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1984년 세상을 떠나신 20세기 기독교 지성인 프란시스 쉐퍼박사가 스위스 라브리에서 세계의 지성들이 모인 가운데 20세기 시대의 방향과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면서 이런 말을 한 바가 있습니다. “19세기에 일어났던 가장 큰 비극은 사람들이 절대 가치를 버린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덧붙이기를 “그래서 현대인은 절망의 선 밑으로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옳은 주장입니다. 19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고 절대적으로 그른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제 아래서 옳고 그름에 관해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사람들은 절대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절대 가치를 부정했습니다.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둘이 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 같은 가치가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자와 남자가 동성애를 즐기는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며 여자와 여자가 동성애를 즐기는 것을 법제화하려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인류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완전히 허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남자는 반드시 한 여인과 가정을 이루어 일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19세기 이전까지는 누구나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을 깨뜨리는 사람들도 일단은 받아들인 후에 깨뜨렸습니다. 하지만 19세기가 되면서 ‘이혼이 왜 죄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따지면서 절대 표준과 절대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도덕적인 혼란이 초래되었습니다. 과거엔 내 마음속에 수용되지 않아도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요구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와서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절대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부인하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 역사를 섭리해 가시는 주체로 믿는 사람, 다가올 종말 시대에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며 심판의 주가 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분명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과 권력과 욕망과 타협하는 회색분자가 아니라 분명한 신앙인의 모습, 결코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절대 신앙, 순수 신앙을 세상 속에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숭고한 믿음의 빛을 밝힘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복된 삶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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