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반전시키시는 하나님
2023년 3월 30일
우리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의 삶입니다. 지금 형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사는 인생도 아니요, 지금 어렵다고 해서 영원히 어려움 속에 살 것이라는 비관적인 인생, 절망적인 인생을 예단하는 것도 잘못된 자세입니다.
신약성경 로마서 8:28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지금 경험하고 있는 각종 삶의 현실이 합력하여 더 좋은 미래, 더 좋은 인생, 더 복된 삶을 펼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중국이 전해주고 있는 사자성어 가운데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새옹지마'라는 말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그 옛날 중국 북방지역에 호족이 있었는데 한(漢)나라는 이 호족 집단의 침략을 대단히 두려워했습니다. 그 국경에 ‘새옹’이라는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노인네 말이 국경을 넘어서 호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마음 아파하니까 그 노인은 말하기를 “이러다가 행운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라고 태연하게 말을 했습니다. 과연 몇 달 후에 집을 나간 그 말이 돌아왔는데 많은 말을 데리고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며 축하의 인사를 하니까, 노인이 하는 말이 “이 일이 화근이 될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습니다. 노인의 말대로 얼마 후에 하나뿐인 아들이 새로 들어온 말을 타고 놀다가 떨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격려하니까, 또 노인은 말하기를 “천만에, 어쩌면 이 일이 큰 행운이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사나운 호족들이 국경을 넘어 한나라를 공격해 옴으로 많은 젊은이가 활을 메고 위험천만한 싸움터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가 전쟁 가운데서 전사하게 되었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에 장애가 있어 전쟁터에 나가지 않음으로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말보다 좀 더 설득력이 있는 말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은 “각종 화가 변하여 오히려 복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위장한 축복’, 혹은 “가장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영어로는 ‘A Blessing in Disguise.’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축복이 축복처럼 보이지 않게 가장해서 찾아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고 있는 족장 야곱의 아들 요셉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의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요셉을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들은 피를 나눈 그의 형님들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갈 그 당시 자신도 자신의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하여 예견하지 못했으며, 형님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도움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창 42:21). 하지만 인생의 후반전에서 삶의 결과를 돌아볼 때 형님들이 자신을 노예 상인에게 팔지 않았다면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큰 사랑을 차지하고 잘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난 이후에는 형님들에게 미움을 받고 왕따를 당하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형님들이 자신을 노예 상인에게 팔았기에 예상치 못한 애굽으로 갈 수 있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고, 또 자신을 연모하는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된 증언을 했기에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힐 수가 있었으며, 애굽의 궁중 관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든 1등 공신을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제외할 경우 그의 형들과 보디발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지 못했다면 그를 애굽에 팔았던 형들 또한 무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이 살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때 요셉이 애굽의 양식을 팔았기에 그의 가족이 모진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었고 희망의 끈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형들이 악한 짓을 했는데도 그들의 동생이 잘 되고 자기들도 잘 되는 상상하지 못한 복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화위복’입니다. 이 모든 현실이 죄악 된 인간의 질투와 정욕과 거짓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불의하고 부정한 일들 속에 말없이 개입하신 하나님의 선한 역사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사 속에 말없이 개입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람, 여호와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친히 우리 인생사에 은밀히 개입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면서 나의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비록 암담하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무한 신뢰하며 매일 매일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청년이 누구보다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교회 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친구들과 성도들이 병문안을 다녀갔습니다.
모두 위로의 말을 하고는 로마서 8:28의 말씀인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말씀을 읽고 나누고 돌아갔습니다. 청년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다리가 절단되어 불구자가 되었는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라면서 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퇴원을 한 그는 의족을 한 채 생활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역에 불타는 열심을 갖고 아프리카의 식인종들이 사는 곳으로 보냄을 받게 됩니다. 그곳은 식인종들이 사람을 보기만 하면 잡아먹기 때문에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식인종들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식인종들은 그를 보자마자 좋은 “밥이 왔다”라며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식인종들에게 자신의 의족을 내밀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다리에 칼을 찔렀으나 칼이 들어가지도 않고 피가 흐르지도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신이 우리 고장에 찾아오셨다”라고 하면서 그 선교사님 앞에 자신들의 잘못을 온전히 고백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졌고, 선교사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선교사님은 그곳에서 선교의 놀라운 열매를 얻게 되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괴롭지 않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결과 살고 싶지 않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사람들이 미워지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이 계획하신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면서 소망의 주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전화위복’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반전시키시는 하나님을 친히 만날 것입니다. 그때까지 두 손을 높이 들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앙망하는 복된 손길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