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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베아티투도(Beatitudo)’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2-03-18
조회수 7169
추천수 562

‘베아티투도(Beatitudo)’

 

벨기에 출신으로 1911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시인이자 수필가요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M. Maeterlinck. 1862-1945)의 동화 <파랑새>는 가난한 나무꾼의 두 아들과 딸 틸틸과 미틸(Tyltyl and Mytyl)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이야기입니다. 틸틸과 미틸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병든 자신의 딸을 위하여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마법사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빛의 요정과 개와 고양이, 빵과 설탕 등의 요정과 함께 과거와 미래를 볼수 있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마법의 모자를 쓰고 ‘추억의 나라’와 ‘밤의 궁전’, 그리고 ‘행복의 궁전’과 ‘미래의 나라’ 등 상상의 나라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찾고자 했던 파랑새는 끝끝내 찾지 못한 채 여행을 다 마치고 허탈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파랑새는 자신의 집 새장속에 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먼 미지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그 이후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습니다.

 

송(宋)나라의 시인인 대익(戴益)의 한시 <탐춘(探春)>에 보면 이런 싯귀가 나옵니다. 終日尋春不見春 종일토록 봄을 찾았지만 만나보지 못하고

杖藜踏破幾重雲 지팡이 짚고 구름 쌓인 곳까지 몇 번이나 헤맸네

歸來試把梅梢看 돌아오는 길에 매화가지 끝을 잡고 보니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성큼 와 있었네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루 종일 봄을 찾고 아름다운 꽃을 찾고자 헤매며 이곳 저곳을 다녀봤지만 찾지 못하고 내 집앞 뜰안에 피어 있는 그 꽃이 그처럼 찾아 헤매던 화사한 매화였다는 것입니다. 내 집 뜰에 피어 있는 그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말이요 그처럼 찾아 헤매던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물과 만사의 평가 기준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 가짐에 따라 만사는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입장과 처지,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헬라어가 있습니다. ‘베아티투도’는 도심을 떠나 한적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카페나 커피전문점의 브랜드가 아니라 ‘행복’을 뜻하는 동사 ‘베오(Beo)’라는 단어와 ‘마음가짐’을 뜻하는 명사 ‘아티투도(Attitudo)’가 합해진 합성어입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말은 우리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서 복(福)을 초래할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저마다 느끼는 행복의 기준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때 누구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아티투도’라는 말처럼 참된 행복은 외적인 요인보다 자신이 심어 놓은 마음의 씨앗으로부터 수확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지면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모든 것은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말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 신라의 고승인 원효의 실증적인 이야기는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효가 661년(문무왕1)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당항성에 이르러 산중에서 길을 잃고 바위굴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한밤중에 갈증을 느끼며 비몽사몽간에 머리맡에 있는 물그릇의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난 이후 아침에 일어나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었던 빗물이었습니다. 잠결에 그렇게도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물이 눈으로 확인해보니 해골바가지의 빗물임을 알고서 새삼 구역질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원효 대사는 결국 모든 이치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 유학의 발길을 돌려 다시금 신라로 돌아와 민간 속에서 널리 자신이 깨달은 깨달음의 진리를 전하며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가르침을 후세에 남기게 됩니다.

 

국제회계학원을 경영하다가 현대인에게 알맞은 명상과 마음수련법을 지도하고 있는 민진희선생이 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라⌟라는 수필에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말하며 눈에 보이는 바깥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진희선생은 말하기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행복도, 불행도, 사랑도, 미움도 결국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마음을 경영하는 것은 자신을 경영하는 것이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넓게 가지면 온 우주를 다 품고 덮을 수 있지만 마음을 좁게 가지면 바늘 하나 꽂을 구멍도 생기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마음 밭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지만 줄 수는 있는 보물이며 아무리 퍼 주고 또 퍼 주어도 줄지 않는 것이 또한 우리 마음의 샘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육체와 영혼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서 마음이 생각을 낳고, 생각이 외적으로 표출될 때 행동이 됩니다. 결국 나의 생각은 조건화된 내 주관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바르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일에 거룩한 고민과 사색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쇠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심령은 날로 새로워 지는 지혜로움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에 속한 사람, 성령의 사람, 말씀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상 만사에 있어서 먼저 달려 간 사람, 신속하게 앞서 간 사람이 역사속에 승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를 묵묵히 걸어 간 사람이 자랑스러운 승자로 남겨 되는 법입니다. 눈 앞의 이익을 쫓아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멀리를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좋은 생각,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될 때 문제가 있을 수 없고 그릇된 결과가 초래 될 일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6:7-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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