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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知音(지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2-03-16
조회수 7872
추천수 556

知音(지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2022년 3월 16일

우리가 삶을 살아 가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자성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섯한 사람을 만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가 깊지 못한 나무와 같다.”고 하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없을 경우 위급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불행의 늪에 빠질 수 있으므로 좋은 친구를 많나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영국의 한 언론사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공모를 낸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공모에 많은 독자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출하며 응시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1위를 차지하게 된 응답자의 고백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을 나르는 것도 아니요 빠르게 달려가는 고속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던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라니…. 그 생각의 참신함이 우리에게 큰 느낌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멀리 가려고 하면 함께 가라'는 말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지난 2019년 2월, 전염병 코로나(COVID19) 팬데믹 현상으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난 이후 벌써 3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실속에서 소원해진 인간관계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좋은 말벗을 찾고 함께 교제하고자 하는 좋은 친구를 찾는 것은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모든 계층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좋은 친구, 가까이 하고 싶은 친구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통일신라시대 말기, 대 문장가로 알려진 고운(孤雲) 최치원선생(857-?년)이 있습니다. 고운 선생이 필자의 고향인 함양의 옛 지명인 천령군 태수로 봉직하고 있을 때, 고을 홍수 피해를 막기위해 조성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상림숲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으며, 그가 올라가 한시를 짖고 읊으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학사루가 지금도 우뚝 서 있습니다. 고운 선생이 학루사에서 지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지은 한시 “가을밤 빗속에서(秋夜雨中)”라는 싯구에 보면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이라는 싯구가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서 “지음(知音)”이라고 하는 말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주는 친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시에도 보면 '지음세소희(知音世所稀)'라는 싯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지음(知音)’과 같은 의미의 사자성어를 “막역지우(莫逆之友:마음이 서로 맞아 거슬림이 없는 친구)”라고 하고, “망형지교(忘形之交:외형적인 것에 구애되지 않고 서로 마음으로 사귀는 친구)”라고도 합니다.

 

이같은 좋은 예표가 구약 왕정시대에 등장하고 있는 지음(知音)의 표상으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을 들 수 있으며, 인류의 메시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18:1에 보면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15:13-14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스스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복보다도 더 큰 복을 얻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친구와 친구끼리의 어깨동무로 유지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란 ‘또 하나의 나 자신’이라고 제롬은 규정한 바 있고,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친구를 ‘이체동심'로 규정하기도 했고,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Q. Horatius, BC65-BC8년)는 자신의 친구였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나의 반신(半身)”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좋은 친구, 知音을 많이 둘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 할 것입니다. 프랑스가 낳은 유명한 소설가 발자크(H. Balzac,1799~1850)는 말하기를 “일생동안 두세 사람 이상의 친구를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으며,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 1709-1784)은 말하기를 “친구가 많은 사람은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바 있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모든 사람의 친구는 그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다(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좋은 친구, 知音을 어떻게 사귈 것인가하는 점입니다. 논어에서 공자선생은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과 벗하면 유익하고, 편벽한 사람· 굽실거리는 사람· 빈말 잘하는 사람과 벗하게 되면 그 인생이 해롭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있어서 좋은 친구를 삼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길은 좋은 친구를 판별하는 방법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판별하는 방법으로 열 한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 판별 방법은 ▲착하고 선한 사람인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가? ▲좋은 사람들을 사귀고 있는가?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가? ▲주변인을 잘 도와 주는가? ▲의리가 있는 사람인가? ▲변함없이 상대를 존중해 주는가? ▲선을 잘 지키고 있는가? ▲정직한 사람인가? ▲절제를 잘 하는 사람인가? ▲칭찬에 인색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열 한 가지 판별 방법속에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모시며 사는 하늘 시민으로서 네 가지 방법을 더 더하고자 합니다. ▲말씀 중심의 길을 걷는가? ▲성령 충만한 사람인가? ▲예배의 성공자로 사는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잘 적용하여 교제하게 된다면 나는 좋은 친구인 知音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런 知音을 찾기 이전에 자신이 이런 知音이 되다면 주변에 있는 좋은 知音이 내게 다가올 것입니다. 죄인된 우리 인간를 위하여 고귀한 知音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덧입은 자들로서 저와 여러분도 외로운 이웃,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의 知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이 知音을 찾고 있는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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