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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견강부회(牽强附會)는 불신앙입니다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2-02-24
조회수 6999
추천수 560


2022년 2월 24일

몇 일 전이었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21대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유세 내용을 보고 정치평론가들이 논평하기를 견강부회하며 모든 것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분들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을 방송을 통해서 들은 바 있습니다. 또한 몇 개월 전의 일입니다. 변호사로서 우리나라 총리를 역임하신 모 정당의 선거관리를 맡은 책임자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모 월간지와 인터뷰 한 것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견강부회’하는 발언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하시는 것을 본 바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한자의 사자성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의 뜻은 “근거도 없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다가 자신의 주장에 유리하도록 맞추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타인의 주장과 견해는 완전히 무시하고 가당치도 않은 말과 주장을 억지로 끌어와서 조건이나 이치에 맞추려고 하는 비 지성적인 언행과 비 이성적인 심사를 비유한 말입니다. 견강부회와 아주 유사한 표현으로 “아전인수(我田引水, 제 논에 물 대기)”와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을 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가 있습니다.

 


견강부회는 원래 견합부회(牽合附會)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로 송(宋)나라의 역사가 정초(鄭樵 1103~1162)가 '통지(通志)'총서(總序)에서 동중서(董仲舒)의 음양설을 비판한 글에서 나온 말입니다. 전한의 유학자인 동중서는 유교를 국가의 주된 이념으로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양(陽)은 귀하고 음(陰)은 천하다고 하는 음양설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송나라 시대 사람인 정초는 법과 제도를 해석하고 풀어쓰기 위해 '통지'를 저술했는데 그는 자연현상의 변화가 다단하고 인간사의 화복을 예측할 수 없는 법인데도 사관들이 일식(日蝕) 따위의 순수한 자연현상의 이변을 견강부회하여 길흉의 조짐으로 해독하는 것을 경계 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견강부회는 토론의 현장에서 조금은 무리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거나 강조하기 위하여 이러한 어법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논술이 정치 논단에서 정화되지 않고 그대로 표현되어진다면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인의 말은 국민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요 또한 한 나라의 국가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보다 더 견강부회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입니다.

 


모세오경 가운데 신명기는 모세가 제일 마지막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선민으로 언약을 맺었던 출애굽 1세대가 불신앙으로 인해서 광야 40년의 여정속에서 다 죽음을 맞이하고 출애굽 2세대가 요단강 동쪽 모압 평지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마지막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증가하신 분이 모세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출애굽 2세대들에게 전한 모세의 3편의 설교가 신명기입니다. 신명기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만이 사는 길”라는 말씀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남방의 땅,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단계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은밀히 파견하고 40일 간의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그때 열 명의 정탐꾼과 두 명의 정탐꾼인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가 완전히 갈리게 됩니다. 열 사람 정탐꾼의 보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지게 하였고 하나님을 불신하며 원망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동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이끌어 내신 출애굽 자체를 잘못된 판단, 잘못된 행동으로 인식하게 만들면서 떠나오게 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두려워 하지 말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열 사람 정탐꾼의 보고로 인해 견강부회하는 백성들의 모습(민1:27)을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광야생활 38년은 엄청난 시련과 함께 죽음의 형벌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고 하셨다면, 무엇 때문에 애굽에 재앙을 내려 그들을 구원해 내셨을까요?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며 반석을 깨트려 생수를 마시게 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매일 보호하시며 시내산언약을 맺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미워하시고 멸하려고 하셨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복잡하게 이끄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것은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요 그들의 선조와 맺은 약속을 성취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어진 현실속에서 견강부회하며 그릇된 믿음의 길, 말씀의 길을 걸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과 같은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로서 나그네의 길을 걷는 우리 성도들은 주어진 말씀을 따라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으면서 범사에 견강부회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앞에 늘 자신을 쳐 복종시켜 가면서 길과 진리와 생명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을 온전히 따라가는 복된 믿음의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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