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성도의교제> 신앙의 글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야고보서 2:8)

제목 무가치한 것은 없습니다.
작성자 민귀식
작성일자 2024-06-12
조회수 319
추천수 0

무가치한 것은 없습니다.

2024611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프랑스에 더 이상 살 수 없어 독일로 망명하여 독일에서 시인으로, 문학가로 활동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 1781~1838)'가 쓴 중편 환상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시대를 초월한 중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독일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나라에도 원로 독문학자 연세대 최문규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열린원 세계문학 다섯 번째 소설로 출판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소설에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매우 가난하게 살던 소설 속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어떤 부유한 상인의 사교장에 나가게 되는데 그 사교장에서 회색빛 옷을 걸친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남자는 슐레밀이 관심을 갖는 각종 물건과 금화를 쏟아내는 마법 주머니와 슐레밀 자신의 그림자와 바꾸자는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슐레밀이 얼떨결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 남자는 마법 주머니를 건네주고 슐레밀의 그림자를 돌돌 말아서 자신의 자루 안에 넣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놀라운 마법 주머니를 소유한 슐레밀은 그토록 갈망했던 물질적인 부와 함께 외형적인 성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림자가 그에게 없다고 하여 놀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유령으로 오해하며 두려워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림자가 없는 슐레밀은 하늘 중천에 태양이 떠오른 대낮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립된 채 홀로 삶을 살아가다가 사랑하는 약혼자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결국 슐레밀은 자신이 원하는 부와 함께 외적인 성공은 거두게 되었지만, 참된 행복을 잃어버린 이후 자신이 하찮게 여긴 그 그림자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속에는 하찮게 보이는 것, 볼품 없이 보이는 것,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을 자세히 바라볼 때 그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 존재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인식한 것, 그 어느 것도 없어서 안 되는 것임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나름대로 다 존재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몰이해로 인해 온전한 가치를 깨닫지 못해 하찮게 여기고 무가치하게 취급할 때가 많이 있지만 정말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내가 바로 알지 못해서 무의미하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 나중에 나를 복되게 하고 나의 인생에 있어서 축복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당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이며 수준 높은 교육 도시인 다소를 떠나서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게 된 로마 시민권을 지닌 유대인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교 율법의 최고 권위자요 산헤드린 공회를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지도자, 유대인의 전승과 율법을 올바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 문화생이 되어 유대인 율법과 전승을 배운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유대교인으로 바리새인으로 삶을 살던 청년 시절, 유대인의 눈에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가시처럼 보였던 그리스도인들, 이들이 다메섹 성에 많이 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대제사장의 체포영장을 받아 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메섹 성을 향하여 달려가게 되는데 다메섹 성 가까이 가게 되었을 때 뜻하지 않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까지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 구약 율법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그릇된 전통과 종교 지도자들의 왜곡된 시선에 의해 메시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 당시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을 중요시한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어서 안 될 암적인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로 민족 반역의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하고 잔해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이런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미국 서부지역의 개척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농부가 자신의 밭에서 심하게 나는 악취로 인해 그 웅덩이를 보고 늘 투덜거렸습니다. 소나 말에게도 물을 먹일 수 없었기에 농부의 불평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결국 농부는 그 웅덩이가 딸린 넓은 농토를 남에게 사정하다시피 하면서 헐값에 팔아넘겼습니다. 늘 심한 악취가 나는 "웅덩이와의 기분 좋은 결별"이 있던 날 그 농장 주변에 있는 농부들과 마지막 파티를 벌이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와의 결별"은 농부에게 있어서 일생 최대의 실수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웅덩이에서 거대한 유전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자 했던 농부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웅덩이는 농사일을 해치는 웅덩이요, 농사일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웅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자리가 "축복의 유전"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사노라면 우리 눈에 무가치하게 보이고 하찮게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그것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계속 두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게 유용한 도구가 되고, 축복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IP 14.43.xxx.xx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