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찾고 있는 한 사람

2024년 5월 9일

이조 500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불교를 타파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숭유억불정책 (崇儒抑佛政策)을 펼쳐 온 것이 사실인데, 그 이면을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도 없잖아 있었지만 유교의 기본 덕목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정신은 우리 민족이 계속해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삼강(三剛)’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학자인 동중서(董仲舒)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서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일컬는 말로서 삼강의 의미는 ‘임금은 신하의 벼리이다’ ‘아버지는 자식의 벼리이다’ ‘남편은 아내의 벼리이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삼강의 ‘강(綱)’이라는 글자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벼리’라는 말로서 ‘기강(紀綱)’을 뜻하는 말로 본래의 의미는 ‘그물 안에 들어 있는 밧줄’로서, 그물을 펼쳤다 오므렸다 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필자는 ‘벼리’라는 것을 아름다운 섬김과 올바른 리더쉽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일컬는 말로서 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로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어른과 젊은이 사이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부부 사이에는 구별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친(親)이란 단순한 ‘친밀함’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仁)을 나타내는 말이며, 의(義)라는 말은 단순한 ‘올바름’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의(公義)를 나타내는 말이며, 별(別)이라는 말은 단순한 ‘구별’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역할이 다름에 대하여 존중을 뜻하는 말로 예(禮)를 표하는 말이며, 서(序)라는 말은 단순한 ‘차례’와 ‘질서’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위아래를 잘 알아야(知) 한다는 것이며, 신(信)이란 단순한 ‘믿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信), 불변의 믿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신(仁, 義, 禮, 知, 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홀로 사는 단독자가 아니라 더불어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가족관계 속에서, 사회 속에서, 각종 공동체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상생적(相生的) 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이는 바로 유교의 기본 정신인 인의예지신(仁, 義, 禮, 知, 信)을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위치와 역할 속에서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며,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가족을 살리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시민의식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족 사랑과 민족 사랑, 열방을 사랑하는 의인(義人)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조선 성종 때, 큰 가뭄이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고, 성종 왕은 금주령까지 내렸습니다.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가슴 아파했던 성종은 백성들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한여름 뙤약볕을 맞으며 논밭을 돌아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풍악을 울리며 잔치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잔치가 벌어진 곳은 당시 사헌부의 최고 우두머리 감찰관인 방주 감찰 김세우의 집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모든 백성이 고생하고 있는데, 나라의 녹봉을 먹고 사는 감찰관이 그럴 수 있단 말이냐!” 성종은 감찰관 김세우는 물론이고 그 잔치 자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다 하옥하라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김세우의 가족들은 늙은 아버지를 위해 아들들의 이름으로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는 긴 상소문을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성종은 “국법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서 자식들까지 동원하여 용서를 빈단 말이냐?”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던 성종은 그의 아들 모두를 잡아들이라는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미리 소식을 접하게 된 김세우의 아들들은 몸을 피해서 멀리 도망을 쳤고, 막내인 김규만 붙잡게 되었습니다. 김규를 붙잡아 오자 성종이 직접 신문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다른 형제들처럼 도망가지 않고 이렇게 잡혀 왔느냐?”하고 신문을 하자 “자기 아버지를 구하려고 글을 올린 것이 무슨 죄라고 도망을 가겠습니까?”하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상소문은 누가 썼느냐?”하고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썼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난 이후, 화가 차츰 가라앉은 성종은 오히려 김규의 당당한 모습에 기특한 생각이 들어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되는데 “가뭄에 관한 주제로 글을 쓸 수 있겠느냐? 그러면 네 아버지를 석방해 주겠다.”하는 조건부 석방 제안을 받고 김규는 단숨에 글을 지어 올렸습니다. “옛날 동해에 원한을 품은 여자가 하늘에 호소하자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은나라 탕 임금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며 비를 달라고 빌었더니 비가 내렸습니다. 원하옵건대 임금께서도 이를 본받으소서.”하는 글이었습니다. 글을 다 읽은 성종은 효성이 지극하고 성정이 올곧은 청년 김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 글을 보고 네 아버지를 석방하고, 네 글씨를 보고 네 아버지의 동료를 석방한다. 너는 아버지에 대한 그 효심으로 나라에 충성하라.”

 

참된 효심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한 5월과 6월입니다. 자신이 처한 위치와 역할 속에서 참된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며 인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 가족을 살리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성숙한 시민 정신과 의인(義人)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지금 세상이 찾고 있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